앞으로 2주간 2006년 6월부터 포스팅해 온 275개의 강연와 공연 가운데 저희가 총애하는 몇 편을 선별해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8월 18일에 재개할 새로운 TEDtalks 포스팅도 기대해주세요. 그때까지 숨겨둔 보석 같은 강연들을 즐겨주시고, 제안사항은 Contact@ted.com으로 주시면 됩니다.
위험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렇게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냥 잘 알려진 2 가지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사실상 유사 이래 대부분이 그렇다고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나, 태양계, 혹은 우리의 환경이든 무엇이든 간에, 인류의 과거(진화로 시작했든 창조로 시작했든), 현재,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미래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일무이하게 최적화된 것이라는 관념입니다.
요즘은 이런 아이디어를 아주 멋들어진 이름으로 부릅니다: 우주선 지구. 이것은 우주선 외부로 나가면 인류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무자비한 환경이고, 오직 우주선 내부만이 우리가 가진 전부이자,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이 우주선을 망쳐버린다면 어디에도 갈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러한 인류의 믿음에 반하여 인간이 사실은 존재의 허브가 아니라는 관념입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이란, 전형적인 은하의 변두리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별의 주위로 공전 운동하는, 전형적인 행성의 표면에 존재하는, 화학적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죠.
앞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매우 특별하고 독특하다고 하고, 뒤의 것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두 명제가 서로 대립하고 있으니 둘을 동시에 인생의 지침으로 삼을 수는 없으실 거에요. 둘 다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고요. (웃음) 사실은 그래요. 그럼 두 번째 이야기로 시작해볼까요?
전형적이다. 글쎄요- 여기가 전형적인가요? 음, 한 번 둘러 보시죠. 아무 방향으로나 말이죠. 벽이 보입니다. 그리고 화학적 찌꺼기들도 있습니다. (웃음) 전혀 전형적이지 않죠? 한 번 같은 방향으로(하늘을 가리키면서) 몇 백마일 쯤 더 가서 뒤돌아본다고 생각해보세요. 벽도 없고 화학적 찌꺼기도 없고, 여러분의 눈에 가득 들어오는 건 푸른 행성일 겁니다. 만약 더 멀리 간다면 태양과 태양계, 별들 그렇게 계속 확장되는 풍경을 보시게 되겠죠. 자 그럼 한 번 우주 바깥으로 더 가봅시다. 뒤돌아보세요. 네, 우리 앞으로 거대한 은하의 나선형 팔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곳에서 10만 광년 떨어진 지점에 왔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전형적인 장소는 없습니다. 전형적인 장소를 찾으려면 은하계 사이의 공간으로 지금 온 것 보다 천 배만큼 더 멀리 가야만 합니다. 어떤가요? 전형적인 우주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나요?
자, TED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은하계 사이의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고해상도 가상 현실을 준비했습니다. 조명을 꺼주세요. 보이시죠? (조명이 나가고, 몇 개의 컴퓨터 스크린을 제외하고 완전히 어둡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요? 은하계 사이의 공간은 완전히 어둡습니다. 새까맣죠. 만약 여러분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별을 바라보는데, 그 별이 초신성처럼 폭발하고, 그 빛이 여러분에게 닿는 순간에 그 폭발을 직접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여러분은 가물거리는 한 줄기 빛조차 보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주는 광대하고, 어둡습니다. 한 가지 설명을 빼먹었군요. 초신성이 폭발할 때의 밝기는 몇 광년 이내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완전히 죽여 놓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것조차 볼 수 없을 만큼 은하계 사이의 공간은 넓습니다. 절대 제로에서 -3도 이내 정도일 수준으로 몹시 춥습니다. 그리고 현재 인류가 가진 최상의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진공 상태와 비교해 백만 배 이상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전형적인 공간이란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으로부터 그렇게나 다릅니다. 그러니 이 곳이 얼마나 전형적이지-않은 곳인지요. 조명을 다시 켜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우리가 익숙한 모든 것에서 이렇게 멀고, 다르고, 이질적인 환경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음, 우리를 닮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식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지식을 창조한다니, 무슨 뜻일까요? 방금 우리가 본 것 보다 더 멀리 봅시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망원경을 통해 별과 닮은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준성(準星, Quasar)입니다. 준성은 원래 별과 유사한 물체를 의미했습니다. 별처럼 보이는 것들을 의미하죠. 그리고- (웃음) 하지만 별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수백만 년 전에, 수백 광년 전에 은하계 중심의 물질들은 초거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강력한 자기장이 중력 붕괴 에너지의 일부를 이끌었다가, 태양의 약 1조 배 이상의 밝기로 로브를 밝히며 무시무시하게 분출되어 나갑니다.
인간의 뇌도 블랙홀의 분출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블랙홀의 분출 속에 있다면, 단 한 순간도 살아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분출 중의 하나를 경험하는 것이 어떨지는 말로 설명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초신성 폭발을 경험하는 것과 조금 닮았다고 할까요? 단 수백 만년 지속되는 동안 폭발을 바로 옆에서 맞는다면요. (웃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화학적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우주의 반대편에서 실제로 이 분출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묘사하고 모형을 만들고 예측하고 설명하기까지 합니다. 여러분도 증인이시죠. 하나의 물리적 시스템인 뇌는 다른 것-준성-의 정확한 운전 모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외견 상 이미지도 닮았지만 그보단 동일한 수학적 관계와 인과적 구조를 구현한 설명적 모델에 가깝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렇습니다.
물리학의 법칙이란 이런 특별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리적 객체는, 가능한 한 서로 다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수학적, 인과적 구조로 체현되는 것을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화학적 찌꺼기인 것은 맞지만 제각기 서로 다른 찌꺼기 들이라는 거죠. 이 화학적 찌꺼기들은 보편성을 띠고, 다른 모든 존재들의 구조와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 곳은 물리 현실의 나머지 전체의 구조적, 인과적 정수를 보이는 하나의 허브입니다.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물리 법칙이라는 것이고, 이것은 물리 세계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입니다.
우리를 닮은 태양계는 어떻게 나머지 우주와 다른 특별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을까요? 스티븐 호킹 박사가 하신 말씀 중 한 가지 옳은 점은-물 론 원래 맞는 말이지만, 저는 강조점이 잘못되었다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특수한 물리학이란 없다고 한 점입니다. 상서로운 섭리나 기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특별함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세 가지와 연관이 깊습니다. 첫째는 물질입니다. 지식을 키워나가는 과정은 정보를 처리하는 형태 중 하나입니다. 정보 처리는 계산 과정이고, 이를 위해서는 계산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계산할 대상 없이는 계산기도 있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계산기를 만들거나, 가장 중요하게는 우리의 지식을 기록할 매체를 만들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지식이나 설명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우나 가장 중요한 것인 증거입니다.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300년 전에 우연히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수백 만년 전부터 수백 만년 후까지 지구의 매 평방미터마다 그 증거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과학이 이와 똑같습니다. 알려진 바, 가장 기본적인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증거는 지구 어디에나 쌔고 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물질, 에너지 그리고 증거로 포화 상태입니다. 은하계 우주 사이의 공간에 대해서는 그 세 가지가 전무 하다시피 합니다. 말씀 드렸듯이, 텅 비어있고, 춥고, 어둡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실상 그건 편협한 오해에 불과합니다. 우주에 우리들이 살고 있는 태양계만한 입방체가 하나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인간의 기준으로 그 공간은 텅 빈 공간입니다. 하지만 수백만 톤의 물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백만 톤이면 새로운 지식 사조를 창조할 목적의 과학자 마을을 포함한 자급자족적 우주 정거장 하나를 건설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의 기술을 완전히 뛰어야 가능한 수준입니다. 우주에서 수소를 모아서 다른 물질로 바꾸는 정도이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물리 법칙에 준하는 것이라면 포괄적 우주 내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단 어떻게 하는지 아는 한은 말이죠. 바꾸어 말하면 문제는 자원이 아니라 지식입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자동으로 에너지 공급은 받게 됩니다. 변형이 핵융합로가 되니까요- 그리고 증거요? 역시 인간의 지식으로 아직 캄캄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근래에 만들어진 망원경으로 바라보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있는 곳과 똑같은 은하계를 보실 수 있어요. 좀 더 성능이 뛰어난 망원경으로 보신다면 그 은하계 안에 별들과 행성들을 보거나 천체 물리학을 하고, 물리학 법칙들을 배우실 수 있습니다. 입자 가속기를 세우실 수도 있고, 초보적인 소립자 물리학, 화학 등을 배우실 수도 있어요. 아마도 가장 견학하기 어려운 과목은 생물학이겠죠.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다녀오려면 수백만년이 소요될테니까요. 하지만 미안하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군요. 리처드. 저는 생물학 견학은 해본 적이 없어요. 매 수백만년에 한 번이나 가능한 일이니까요 (웃음).
그래서 사실상 은하계 사이의 공간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기 위한 모든 필요 조건을 충족합니다. 우주의 어느 곳이라도 우리와 똑같은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생물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은하계 사이의 공간이 새로운 사조를 창출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떠한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오염된 지구도 가능하니까요. 제한 인자는 언제나 자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원은 넘쳐납니다. 귀한 것은 지식입니다.
이런 우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약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왜냐하면 특정 지식들이 없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주적 차원의 난제들 가운데서 살아 남을 수 없을 테니까요. 많은 일이 일어날 필요도 없어요. 초신성 하나가 몇 광년 바깥에서 폭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죽어버릴테니까요! Martin Rees의 최근 저작은 천체물리학, 잘못된 과학 실험, 가 장 중요한 대량살상무기 테러 등 온갖 종류의 일들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금세기 인류가 생존할 확률은 50%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후일 그의 강연도 TED 컨퍼런스에서 보실 수 있을 거에요.
가능성 여부로 이 주제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류가 생존할 수도 멸망할 수도 있다는 그의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운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시간 내에 필요한 지식을 창조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런 위험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늘 종들은 멸종하고, 문명은 끝납니다. 출현했던 종과 문명의 압도적 다수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예외가 되기 위한 인류의 유일한 희망은 우리 종과 문명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분 짓는 하나의 특성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물리 법칙과 우리의 특별한 관계 말입니다. 새로운 설명과 지식을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존재의 허브가 될 수 있도록. 이것을 최근의 논란에 적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특정한 입장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종류의 문제인지를 보여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논란의 주제는 지구 온난화 문제입니다. 제가 물리학자이긴 하지만 이 문제를 다루기에 적합한 전문가는 아닙니다. 지구 온난화 문제에 있어 저는 문외환이나 다를 바 없지요. 문외한으로서 합리적인 선택은 유력한 과학적 이론을 존중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 이론에 따르자면 재난은 이미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교토 의정서, 경제 제재 혹은 수 억 달러의 막대한 비용이든 무엇이든 들여서 CO2 배출을 막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 상황이라면, 어떤 합리적인 관점에서도 이미 재난인 것은 맞습니다. 이루어진 조치들도 문제 해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상황을 조금 지연시키려는 의도였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제 피하기는 늦은 문제라고 하지만 아마도 아무도 이런 위험을 깨닫기 이전에 이미 피하기 어려운 상태였으리라고 봅니다. 공업적 배출량이 새로운 빙하기 도래를 촉진해 수백만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과학적 이론이 유행했던 1970년에도 이미 늦었을 거에요.
교훈은 분명해 보이는데 이런 내용이 왜 공개적인 토론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항상 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임박한 재난이 입힐 피해보다 적은 금액을 들여서 재난을 극복할 방법을 안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고도, 예방적인 법칙도 우리가 아직 예상하지 못하는 문제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 온스의 예방이 1 온스의 치료와 같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예방할 것인지 아는 한 그렇다는 것이죠. 코에 한 방 맞았을때, 의료 과학이 그것을 어떻게 피하는지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만약 의료 과학이 치료를 위한 연구를 멈추고 예방에 집중한다면 두 가지 모두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세계는 어떻게 해서든 가스 배출을 강제로 줄이기 위한 계획으로 시끌시끌합니다. 지구의 열을 식히는 동시에, 더운 기온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계획을 짜느라 분주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어떤 비용을 들여도 상관없다는 식이라면 곤란하고,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그런 계획들이 몇 가지 존재합니다. 태양광선을 반사하기 위해 우주에 거울을 설치한다거나, 수중 생물들이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섭취하도록 한다든가 하는 등의 것들입니다. 현재로서 초보적인 연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류가 이 문제 외에 다른 난제들을 해결해나가는 방식들도 실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인지하지 못한 문제들을 예방하는 능력-순전히 운이 좋아 피하는 것 말고요-은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인류의 희망사항입니다.
그러니 석판 두 개를 들어서 이렇게 새겨주세요. 하나에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다른 하나에는 "문제는 피할 수 없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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